정희재 감독의 ‘히치하이크’는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서울독립영화제2017, SIFF2017) 본선경쟁 부문의 장편 영화이다. 재개발 지역에 살면서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포기한 채 죽을 날을 기다리는 아빠 영호는 딸 정애(노정의 분)에게 포기하면 모든 것이 편해진다고 말한다.
정애는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엄마 영옥을 찾아가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막다른 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태워준다면(히치하이크) 그로 인해 작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히치하이크’에서 정애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 자신을 돌봐줘야 할 아빠는 치료비로 인한 부담을 딸에게 남기지 않기 위해 삶을 포기하겠다고 결심하고, 엄마는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다 결국 엄마를 찾기는 하지만...
엄마를 찾으러 간 곳에서는 끔찍한 위험에 빠질 뻔했고, 친척을 비롯해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살면서 정애처럼 인생의 막다른 곳에 몰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그런 사람도 꽤 있을 것이고, 심리적인 면까지 확대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히치하이크’의 정애를 보면서 나 같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아픔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희망이라고 기대했던 것이 절망이 되면 더 큰 상처와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바닥에 내려왔기 때문에 더 이상의 추락은 없을 것 같아도, 지하실로 또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그런 상황과 경제적 추락은 더욱더 큰 심리적 추락으로 이어진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이럴 때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 내가 길이 아닌 곳에서 헤맬 때 누군가 그 길 위에서 나를 히치하이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정말 어려울 때는 정말 필요할 때는 나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히치하이크’에서 잔잔하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큰 파도의 격랑으로 다가올 수 있다.
◇ 열여섯 살 소녀의 성장기, 누군가 마음을 열고 싶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정애는 친구 효정(김고은)의 친부로 의심되는 현웅(박희순 분)을 만나 그의 가족이 되고 싶다. 방어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정애는 현웅을 만나고부터 부드러우면서도 차분하게 바뀌는데, 내적으로는 오히려 강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 나의 마음을 알아줄 것 같은 사람이 한 사람만 있더라도, 나는 그로 인해 차분해지고 내적인 내 마음의 파편을 추스를 수 있고, 그러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영화는 전달한다.
◇ 노정의, 배우로서의 그녀의 성장 또한 기대하며
노정의는 그런 디테일한 감정을 몰입해 표현하는데, 연기 경력이 꽤 많은 배우들에게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통해 정서를 살리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내면을 표현하고 통제하는 능력은 그녀의 연기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히치하이크’에서 감정의 폭을 의도적으로 조절했을 수도 있고, 감각적으로 조절했을 수도 있고, 철저하게 감독의 디렉팅을 따라갔을 수도 있는데, 어떤 경우이든 노정의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박희순은 노정의와 함께 하는 장면에서 무채색의 연기를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관객의 정서적 초점이 노정의에게 유지되도록 하기 위한 배려의 연기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