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환 감독의 ‘국경의 왕’은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서울독립영화제2017, SIFF2017) 새로운선택 부문의 월드 프리미어(World Premiere) 장편 영화이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오래된 친구를 만나러 각각 유럽의 도시를 찾은 유진(김새벽 분)과 동철(조현철 분)을 통해, 낯선 곳, 좋은 기억, 좋은 영화, 오래된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시작 첫 장면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작품, 낯설게 하기와 친근해지기의 사이
영화가 시작되면 공항의 자동문 유리창을 통해 처음 보이는 유진의 모습이 보인다. 2개의 유리창을 통해 보이다가, 1개의 유리창, 드디어 아무것도 필터링하지 않은 유진의 얼굴이 드러난다.
어딘가를 멍하게 쳐다보던 유진은 후드티 모자를 벗으며 머리를 모두 보여준 후 가방에서 물을 꺼내 반 통 이상을 한 번에 마신다. 그러다가 유진은 갑자기 많이 마신 물에 잠시 버거워한다.
작품이 가진 정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작은 인상적인데, 감독은 단지 배우를 공항에 데려다 놓은 것에 머물지 않고, 관객의 정서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안내한다.
그냥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선명하진 않지만 보이는 내면, 시원하게 뭔가 하고 싶지만 그런 게 버거운 현실. 카메라가 등장인물을 따라가기도 하지만, 첫 장면처럼 등장인물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오는 구도도 많은 점이 흥미롭다.
꽃집에서 유진과 꽃집 남자(임철 분)의 대화는 차량 소음에 관객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낯선 거리, 뜻밖에 만난 사람, 오래된 예술품. 진짜 이상한 상황일 수도 있지만, 진짜 이상하게 받아들인다고도 볼 수 있는 유진의 행동을 보면 이 영화는 낯설게 하기와 친근해지기 사이를 오가며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감독은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라고 연출 의도를 밝힌 바 있다. ‘국경의 왕’은 쉽게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영화이고, 어렵게 받아들이면 어렵게 해석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 이유는 작품 자체의 난이도라기보다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겪고 있는 현실 때문일 수 있다. 낯선 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지만, 우리 삶의 정서와 닮아 있는 등장인물의 내면에 감정이입하게 되면 실제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진다.
◇ 장편 클래식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
‘국경의 왕’은 고즈넉하게 동유럽의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클래식 음악과 함께 보이는 오래된 건물과 도로, 예술품은 마치 무척 긴 장편 클래식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
유진과 동철, 은경(이유진 분)이 도로에서 밤에 공을 주고받는 시간을 포함해 배경 자체가 예술인 장면은 보는 즐거움을 높인다. 실제로 폴란드, 우크라이나에 가 본 적이 있는 관객은 영상이 더욱 실감 나게 예술적으로 보일 것이다.
사람을 따라가기보다는 한 번 선택한 시야를 유지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영화를 보면서 도로와 건물을 계속 음미할 수 있도록 한다. 구도만 잘 잡아도 아름다운 미장센이 나온다는 점은 흥미롭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