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현 감독의 ‘얼굴들’은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서울독립영화제2017, SIFF2017) 본선경쟁 부문의 장편 영화이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사람들의 얼굴들에 초점을 맞춘다. 얼굴에 집중한다는 것은 사람 자체에 집중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그 사람의 내면에 집중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그 사람이 살아온 삶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얼굴들,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사람들,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내면들
감독은 연출 의도를 통해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하나의 확실한 절망과 하나의 확실한 힘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영화는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얼굴들에는 그 사람의 삶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등학교 행정실 직원 기선(박종환 분)은 문득 축구부 학생 진수(윤종석 분)의 존재가 궁금해지고, 기성의 옛 애인 혜진(김새벽 분)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어머니의 작은 식당을 리모델링하려고 한다. 택배기사 현수(백수장 분)는 이들 사이를 스치고,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
‘얼굴들’은 지켜보는 누군가를 또다시 지켜보는, 다른 표현으로는 훔쳐보는 누군가를 또다시 훔쳐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런 상황은 다른 영화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설정이지만, ‘얼굴들’은 등장인물의 행동보다는 행동을 하고 있는 얼굴에 더욱 관심을 가진다는 차이점을 보여준다.
얼굴이 가진 이런 상징성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얼굴과 얼굴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도록 만든다. 감독의 관찰성은 관객들로 하여금 감독과 같은 시야의 관찰성을 경험하도록 만들고 있다.
◇ 기선을 선생님이 아니라 행정실 직원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에서 진수의 진학과 축구부 생활에 대해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면, 기선의 직업이 행정실 직원이 아니라 선생님이어도 무방하다고 생각된다. 기선과 진수의 관계를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사제지간으로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얼굴에 확실한 절망과 확실한 힘이 같이 있다고 감독이 공존과 균형을 이야기한 것처럼,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도 완벽한 상하관계가 아닌 주고받는 관계로 설정했다. 혜진은 엄마(전소현 분)에게 가르침을 받기만 하는 딸이 아닌 리모델링을 위한 가정 내 컨설턴트이자 동업자인 것처럼, 기선과 진수 사이에서도 간극을 가능한 좁히려고 한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상하관계로 설정됐으면 이들 사이를 스치는 현수, 그들을 모두 바라보는 이 또한 관찰자가 아닌 감시자이거나 판단자가 됐을 수도 있다. 스토리텔링상의 설정일 수 있지만 감독의 평등 정신은 영화 속에 녹아 있고, 이는 각각의 얼굴들에 모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개연성을 만들고 있다.
◇ 내레이션을 통한 시점의 변경, 긴장감을 강하게 유발하는 연출법
영화를 볼 때 관객은 특히 우리나라 관객은 감정이입해 관람하는 경향이 많은데, 3인칭 시점으로 진행될 때는 자신이 감정이입한 인물 이외에는 3인칭으로 보게 될 수 있는데, 내레이션이 펼쳐질 때는 내레이션에 감정이입하게 돼 일종의 전지적 시점으로 감정이입해 영화를 보게 될 수도 있다.
한 인물이 아닌 전체에 감정이입해 들어가면 영화에 더욱 밀착하게 되기 때문에 긴장감이 강하게 유발된다. 각각의 이야기로 진행되던 스토리텔링을 묶으면서 반전을 펼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김새벽은 ‘얼굴들’이외의 다른 작품을 통해서도 이번 영화제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열정 있으면서도 다소 시크한 모습을 김새벽은 자연스럽게 표현하는데, 할 건 하지만 부담스럽지는 않은 캐릭터로 친근함을 구축해가고 있기 때문에 다작을 하며 쌓인 연기 내공이 관객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기대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