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M9

문화예술
HOME > 문화예술 > ET-ENT영화

[ET-ENT 영화] 서울독립영화제(12) ‘살아남은 아이’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발행일 : 2017-11-14 16:39:50

신동석 감독의 ‘살아남은 아이’는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서울독립영화제2017, SIFF2017) 본선경쟁 부문의 장편 영화이다.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성철(최무성 분), 미숙(김여진 분) 부부의 아들 은찬은 6개월 전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진 기현(성유빈 분)이라는 아이를 구하고 익사했다.

어려운 처지의 기현을 돕고 싶은 성철은 기현에게 인테리어 일을 가르쳐주고, 동생을 가지고 싶다는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미숙은 인공수정에 실패한다. 기현은 그들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고, 세 사람은 가족처럼 지내게 된다.

‘살아남은 아이’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살아남은 아이’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 살아남은 자의 슬픔, 기현에 대해 가지는 양가감정

‘살아남은 아이’에서 성철, 미숙, 기현에게는 모두 트라우마가 있다. 성찰과 미숙은 아들이 죽은 슬픔과 함께 기현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는 마음을 솔직히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현은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죽었다는 마음의 짐과 상처를 짊어지고 살 수 있다.

성철과 미숙은 기현이 불쌍하기도 하고 은찬 대신 기현이 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들이 대신 죽었기 때문에 미운 마음도 함께 양가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양가감정은 두 가지 상호 대립되거나 모순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를 뜻한다.

‘살아남은 아이’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살아남은 아이’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제3자의 입장이 아닌 각각 다른 당사자인 성철, 미숙, 기현은 모두 죽고 싶을 수 있다. 아들이 없는 괴로움은 죽는 것보다 힘들 수 있고, 기현은 차라리 자신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성철, 미숙, 기현 모두 상처받은 사람들인데, 영화는 기현을 원인 제공자 혹은 내재적 죄인으로 보기보다는 상처 입은 영혼의 하나라고 본다는 점이 주목된다. 현실에서는 기현에게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기현은 그런 고통을 당해도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감독과 성철, 미숙이 기현에게 손을 내밀어 준다는 점은 의미 있게 다가온다.

‘살아남은 아이’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살아남은 아이’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 남의 이야기라고 무책임하게 말하는 사람들, 위로하는 척하면서 공격하는 사람들

미숙은 성철과 같이 모임에 갔다가 남의 이야기라고 무책임하게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상처를 입는다. 실제로도 위로하는 척하면서 공격하는 사람들은 무척 많다. 주로 주변 사람들이 저지르는 이런 행위는 대놓고 비난하는 것보다 더 비열하고 치사한 공격일 수 있다.

남의 아픔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거나, 상대가 아닌 자신을 위해 잘못된 위로를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위로를 가장한 비꼬는 말투, 남의 불행을 즐기는 행위는 상처 입은 사람들을 여러 번 죽이는 일이다. ‘살아남은 아이’처럼 특히 죽음 앞에서는 그렇다.

‘살아남은 아이’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살아남은 아이’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 성철의 마음과 최무성의 표현법, 미숙의 마음과 김여진의 표현법

‘살아남은 아이’에서 성철과 미숙이 기현을 포용하는 과정은 상처 입은 아이가 아닌 모든 아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결정적일 때 도와주지만, 무조건 퍼 주지는 않는다. 바로 심판하지도 않는다. 잘못한 일에 대해 스스로 반성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기회를 준다.”

성철의 마음을 표현한 최무성의 연기력, 미숙의 마음을 표현한 김여진의 연기력은 무척 돋보인다. 김여진은 숨겨진 사실을 알게 된 후의 충격적인 내면을 뒷모습으로도 전달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살아남은 아이’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살아남은 아이’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영화는 관객들을 크게 두 번 흔들어 놓는다. 처음에 시작하면서, 중간 이후에 다시 한 번. 관객들은 두 번 크게 놀라게 되지만, 영화 속 미숙과 성철은 죽음 이상의 공포를 두 번 겪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더욱 중요한 점은 성철과 미숙은 영화 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아닐지 몰라도 우리 또한 성철과 미숙이 될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최신포토뉴스

위방향 화살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