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조 감독의 ‘혀’는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서울독립영화제2017, SIFF2017) 본선경쟁 부문의 월드프리미어(World Premiere) 단편 영화이다. 지난밤 선생님(김민엽 분)이 자신에게 혀를 넣었다고 주장하는 마음(정지안 분)이와 그런 적이 없다고 펄쩍 뛰는 선생님 사이에서 규성(김가빈 분)은 허우적댄다.
재미있게 표현했지만 매우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담고 있는데, 진실이 무엇인지와 함께 그 과정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주목된다.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기에 단지 웃으며 볼 수만은 없는 작품이다.
◇ 성추행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
‘혀’는 성추행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선생님은 자신의 행동이 전혀 잘못됐다고 느끼지 않는다. 잘못을 하고 발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행동이 잘못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선생님은 그런 행동이 성추행으로 고발된다면 대학로에서 남아날 사람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더라도 관행을 빌미로 죄의식 없이 행해지는 행동들을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 세 명 중 자신 있게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혀’는 관객의 입장에 따라서 다른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어떤 누구라도 비난할 수밖에 없는 가해자와 어떤 누구라도 그 편에 서고 싶게 만드는 피해자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분명한 가해자와 분명한 피해자라기보다는 애매한 가해자와 애매한 피해자, 그리고 애매한 방관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로도 이런 애매한 상황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애매한 피해자에게 아무 사과도 없이 사건이 묻히는 경우도 있고, 애매한 가해자에게 실제보다 과한 처벌이 가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애매한 방관자는 가해자와 별 차이 없는 가해자처럼 볼 수도 있고, 또 다른 피해자라고 볼 수도 있다. 다른 시야에서는 애매한 방관자에게 더욱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다. 규성이 애매한 방관자의 입장을 취한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혀’에서 선생님, 마음, 규성이 각각 100% 잘못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런 이유로 다른 사람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라고 한다면 규성과 같은 시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 매운 것은 매운맛 때문이 아니라 혀 때문이다? 인과관계의 모순
‘혀’에서 규성이 시킨 쌈밥은 먹기 힘들 정도로 매우 매운데, 선생님은 매운 게 혀 때문이라고 말한다. 원래 매운맛이 없고 통점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매운 이유는 혀라고 말한다.
매운맛이 없다고 치더라도 통점을 유발하는 물질 때문에 매운 통증이 발생하는 것이지 통점이 있기 때문에 매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인과관계의 모순이다. 그런데, ‘혀’에서는 인과관계의 모순을 포함한 말에 대해 규성이 잠시 움찔한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관객들 또한 “그런 게 아닐까?”라고 순간 착각할 수도 있다.
순간순간의 현혹된 말로 인과관계의 모순을 진리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세세하게 따지고 들지 않을 경우 그들의 말을 진리라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혀’에서 감독은 내면에만 직접적으로 몰입하기보다는 행동을 통해 내면을 보여줌으로써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혀’의 감독판이 별도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내용과 디테일이 담길까 궁금해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