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섭 감독의 ‘예술의 전당’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비가 오는 밤 택시기사 원일(우정국 분)은 우연히 바이올린을 갖게 되는데, 바이올린을 잃어버린 영희(오혜수 분)와 엄마 화영(박명신 분)은 걱정이 태산이다.

◇ 디테일의 힘, 일상적이면서도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
‘예술의 전당’은 택시에서 일상적으로 펼쳐지는 일들을 보여준다. 택시가 특별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인식을 먼저 심어준 후, 비 오는 밤의 일상적이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외부 환경을 보여준다.
택시기사가 바이올린을 줍는다면 손님이 택시 안에 바이올린을 놓고 내렸을 것이라고 흔히 예상할 수 있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 원일의 손에 바이올린이 들어온다. 택시기사가 분실물을 습득하는 일반적인 상황을 만들면서도, 디테일은 다르게 만들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원일이 선생님 선아(김수진 분)와 만나는 장소는 예술의전당이고, 그 이전에도 택시가 이동하는 동선은 예술의전당 인근이다. 감독은 영화의 제목을 고유명사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일반 명사로 받아들일 수도 있도록 중의적으로 제목을 선정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 계속 듣다 보면 소리가 들린다
‘예술의 전당’은 바이올린의 가치는 아는 사람들만 알고 있고 바이올린의 진짜 소리는 들을 줄 아는 사람들만 들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문가인가 일반인인가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좋아하면 어느 순간 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경험해 본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영화의 경우에도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볼 정도로 좋아하는 마니아는 처음에는 일반 관객이었을 수 있지만, 어느 순간 아티스트와 창작자의 시야를 갖게 될 수 있다. 이는 오랜 경험의 축적일 수도 있고, 가치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만들어질 수도 있다.
‘예술의 전당’에서도 300만 원 바이올린보다 1억 5천만 원 바이올린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바이올린이 비싼 바이올린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바이올린 소리가 다르게 들릴 수 있는데, 이는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런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들으면 들릴 수도 있다.

아티스트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아티스트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결국 자신에게 가장 행복한 일이다. 우리가 문화예술을 작품을 볼 때 얻고자 하는 것이 예술적 감동과 행복감이라면, 우리를 위해서라도 아티스트를 존중해야 한다. ‘예술의 전당’에서도 이런 뉘앙스를 전달한다.
◇ 보조 출연자로 관객석을 채우지 않은 아이디어
‘예술의 전당’은 공연 장면에서 관객석을 모두 보조 출연자로 채우기보다는 빈자리를 뒀는데,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이 돋보인다. 특히 제작비를 충분히 쓸 수 없는 단편영화, 독립영화의 경우 공연장의 관객석 전체를 채울 수도 어설프게 일부분만 채울 수도 없다.

감독은 이를 위해 콩쿠르 예선이라는 아이디어를 선택했다. 만약 콩쿠르 예선이라는 설정이 아니었다면 마지막 시퀀스로 인해 영화 전반의 개연성이 흔들렸을 수도 있다. 잘 선택한 아이디어 하나가 얼마나 감동적인 여운을 남길 수 있는지 ‘예술의 전당’은 보여줬다.
바흐의 ‘Partita No.3 in E Major, BWV 1006, “Prelude”’는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다는 기억이 떠오를 수 있는 곡인데, 음악영화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아는 노래를 영화를 통해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행복해할 것이다.
아는 음악을 더 듣고 싶어서 엔딩크레딧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관객들이 갖게 한 것은 감독의 똑똑한 선택이다. 이준섭 감독이 스토리가 더욱 강화된 장편 음악영화를 만든다면 어떨까 기대하게 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