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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301 401’(감독 조경호) 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44)

발행일 : 2017-02-14 17:14:17

조경호 감독의 ‘301 401’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제목만 보면 윗집 아랫집의 달달한 에피소드이거나, 층간 소음을 둘러싼 갈등일 것이라고 흔히 예상할 수 있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에서도 사건을 보여주면서 내면의 울림에 관심을 가진 조경호 감독은 ‘301 401’에서 이미 사회라는 관계성 속에 인간 본연의 마음에 자리 잡은 외로움, 내 이야기를 말하고 싶은 욕구, 이루고 싶은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301 401’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301 401’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는 껄끄러운 이야기, 라디오 사연을 통한 스토리텔링의 전달

‘301 401’은 어느새 밤 11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 ‘젊음의 파노라마’의 소리로 시작한다. 한 밤의 외로움을 나누는 사연을 보내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라디오 DJ(이자옥 분)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글로리 맨션 301호에 사는 여자(오혜수 분)은 아직 이름이 없다고, 자신을 그냥 301호에 사는 여자 ‘301’로 불러달라고 사연을 보낸다. 여자는 글로리 맨션, 301호 등 구체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정보를 남긴다.

‘301 401’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301 401’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수 있게 정보를 줬지만 이름을 알려주지는 않는다는 것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어쩌면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름이 아직 없다’는 구체적인 정보를 준 것이라는 것이라고 추정하면, 관객은 상상력을 마구 발휘해 영화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급격히 높일 수 있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익명성의 세계에 살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기를 바란다. 온라인의 공간보다 오프라인의 공간, 특히 비공개 게시판, 익명 게시판과 같이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 곳을 선호하면서도, SNS를 통해 자신의 사소한 일상까지도 모두 공개하고 다른 사람이 봐주기를 바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301 401’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301 401’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301호의 여자가 라디오에 사진을 보낸 형식과 내용은 그런 현대인의 익명성과 노출성을 동시에 상징하고 있다. 부끄러움과 수줍음, 감추고 싶음으로 인해 익명성을 추구하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외로움에 온라인에서라도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이 노출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흑백 영상으로 보이는 장면도 이런 뉘앙스를 뒷받침한다

301호에서 401호로 가는 계단은 특별할 것이 없는 계단으로 볼 수 있는데, 흑백 영상으로 찍으니 미로 같기도 하고, 오락 게임에서 계단을 오르는 플레이어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301호 여자는 비슷한 형태의 오락 게임을 하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기보다는 라디오 사연을 통해서 한 것처럼 401호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을 오락 게임의 화면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301 401’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301 401’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흑백 영상은 칼라 영상에 비해 정보를 차단하지만, 칼라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에서는 또 다른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칼라 영상이 시작됐던 시대에는 빈 공간의 정보가 칼라로 표현되면서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했다면, 칼라의 시대에 흑백 영상은 의도적인 빈 공간을 만들어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 음식의 만찬 301호, 수의 만찬 401호

301호의 여자는 밤 11시에 요리를 한다. 요리를 맛보는 시간은 설레고도 두려운 시간이라고 사연의 내용 속에 표현하는데, 밤에 요리를 하는 소리는 401호나 201호 혹은 202호에 시끄럽게 들리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진다.

‘301 401’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301 401’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401호 남자(이승철 분)도 301호 여자와 같은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는 점은 서로 다르지만 서로 공통 요소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식과 수학, 서로 다른 것에 밤마다 매달렸다고 볼 수도 있지만, 301호는 음식의 만찬을 하고 401호는 수의 만찬을 했다고 보면 두 사람은 모두 각자가 좋아하는 만찬을 매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301 401’은 엔딩크레딧과 함께 추가 영상을 볼 수 있다. 추상적인 영상이 구체화된다고 느껴지는데,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가진 뉘앙스가 더욱 선명해진다고 생각된다. 영화 마지막 장면으로 확실하게 할 수도 있지만, 엔딩크레딧과 함께 여운으로 툭 던질 수도 있다는 것을 ‘301 401’은 보여준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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