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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서울독립영화제2016 상영작(20) ‘일’

발행일 : 2016-12-02 20:06:00

박수현 감독의 ‘일(Work)’은 2011년 개나리 필 무렵까지 계속된 1년간의 용역 생활을 들려주는 목소리를 담은 작품이다.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서울독립영화제2016) 본선경쟁 섹션의 단편 영화로, 이번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World Premiere)로 상영된다.

◇ 철거 용역의 시야로 바라보다

‘일’은 철거민의 시야도 아닌, 철거를 지시한 사람의 시야도 아닌, 철거 용역의 시야로 바라보는 작품이다. 철거 용역의 입을 통해 그의 생각도 듣게 되며, 재건축 대상 건물의 철거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철거민이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거나, 철거를 지시한 사람의 입장에서 봤으면, 관객은 어느 정도 예상함으로써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지만, 철거 용역이 어떤 생각을 할까라는 궁금함에 ‘일’을 집중해 관람하게 된다.

‘일’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일’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일’은 목소리로 전달되는 이야기이다. “안 때린게 어디냐?”로 시작한다. 피아노도 배워보고 싶었고, 과학 키트도 사서 조립해 보고 싶었던 어린 시절을 가진 철거 용역은 집을 부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게 아니라, 시키니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일의 개념이 뭘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돈벌이로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되는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라고 거창하게 봐야 하는지, 생존을 위한 수단인 것인지. 영화의 철거 용역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시키니까 하는 것이라는 비슷한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런 이유가 면죄부가 될 수 있는지.

‘일’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일’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하는 영화, 이미지적으로 전달되는 영상

이번 영화제의 작품 중에는 ‘일’처럼,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목소리로만 등장하면서, 영상은 활동적인 동영상이 아닌 거의 정지된 장면을 찍는 듯한 모습을 채택한 영화들이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일’은 철거 용역의 인터뷰로 진행되는데, 질문을 하는 상대방은 목소리도 나오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는 것은 추정할 수 있다. 철거 용역이 작가가 돼 스스로 내용을 구성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큐멘터리이고 한 명의 목소리만 등장하지만, 작품에서 감독의 의도가 충분히 전달된다.

‘일’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일’ 스틸사진.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일’은 영상 자체는 많은 스토리를 담고 있지 않다. 그냥 스틸사진의 연속이거나 짧게 움직임만 보이는 이미지적 느낌을 준다. 영상과 대사를 분리 해체해 다시 재조립한 것 같이 생각할 수도 있다.

영화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언급한다. 철거 용역은 철거를 하지만 안에 있는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영화는 정의감과 자신의 신념에 맞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생각하게 만든다.

이 영화의 제목은 ‘철거’나 ‘용역’이 아닌 ‘일’이다. 새로운 시야에서 바라보는 것이거나 혹은 반어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앞뒤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담아 철거 용역의 시야로 장편 픽션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관객들이 분노는 소리, 철거 용역도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 같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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